프롤로그: 새벽 3시, 서버실에서

새벽 3시, 서버실에서. 해시스크래퍼의 회사에서 데이터 크롤링하는 이야기. AI 모델 공개, 데이터 수집의 진화와 초대장에 대한 생각.

밤치 41

새벽 3시, 서버실에서

서버실의 팬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울려 퍼지는 새벽 3시.

나는 다시 여기 있다. 10년째 같은 자리, 같은 모니터 앞. 초록색 커서가 깜빡이는 터미널 창에는 방금 실행한 크롤러의 로그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2024-12-19 03:14:22] Crawling started...
[2024-12-19 03:14:23] Found 1,847,293 URLs
[2024-12-19 03:14:24] Extracting data...

해시스크래퍼(HashScraper). 내가 만든 회사의 이름이다. 해시(#)처럼 정확하게, 스크래퍼처럼 집요하게. 우리는 웹의 구석구석을 파헤쳐 데이터를 추출하는 전문가들이었다.

아니, '이었다'가 맞는 표현일까?

모니터 옆에 놓인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뉴스 알림이다.

"OpenAI, 새로운 AI 모델 공개... 100만 토큰 컨텍스트로 웹사이트 통째로 분석 가능"

손가락이 멈춘다. 키보드 위에 올려둔 채로.

우리가 몇 날 며칠 걸려 짜던 xpath, 정교하게 조율하던 CSS 셀렉터, 자바스크립트 렌더링을 기다리며 써내려가던 수만 줄의 코드. 이 모든 것이 단 한 줄의 프롬프트로 대체되는 시대.

# 10년 전 내가 처음 짠 크롤러
def my_first_crawler():
    # 손수 파싱하던 그 시절...
    pass

# 이제는?
ai.crawl("가져와")  # 끝

창밖을 본다.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인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데이터이고, 누군가의 이야기다. 우리는 그것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제...

"이젠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혼잣말이 서버실에 메아리친다. 갑자기 서버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조소처럼 들린다.

아니다. 이건 조소가 아니다.
이건... 초대장이다.

변화의 초대장.
진화의 초대장.
그리고 어쩌면, 초월의 초대장.

나는 의자에서 일어난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크롤러를 멈춘다.

[2024-12-19 03:33:33] Crawler stopped by user
[2024-12-19 03:33:33] Total crawled: 0
[2024-12-19 03:33:33] New journey: Beginning...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크롤러가 연금술사가 되기까지.
손이 사라지고 눈이 열리기까지.
데이터를 놓고 의미를 붙잡기까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AI와 함께 춤추는 법을 배우기까지.

따라오시겠습니까?
그럼 시작합니다.

첫 번째 회차: 디지털 손의 소멸.


2025년 6월, 서울

해시스크래퍼 대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