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왜 나는 콘텐츠 앞에서 늘 멈추는가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만 책임감으로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한 글. 너무 진지한 사람일수록 더욱 많은 고민을 하는 이유.

bamchi 397

— “이 정도가 쓸 만큼 대단한가?”라는 질문이 생기는 이유


글을 쓰려고 노트를 열었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닫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너무 진지한 사람이다.


머릿속에는 생각이 있다.

경험도 있다.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손이 멈춘다.

마치 어떤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 정도가 정말 쓸 만큼 대단한가?”

“이게 사실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혹시 누군가를 오해하게 만들진 않을까?”


이 질문들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생기는 질문이 아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만 하는 질문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



당신은 아마 이런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 뭔가를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한다

  • 예외 케이스가 떠오르면 문장을 고치거나 지운다

  •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다

  •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개발자에게,

그리고 성실한 창작자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문제는 이 태도가

콘텐츠 세계에서는 종종 ‘침묵’으로 번역된다는 점이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늦는다.

단정하지 않는 사람은 약해 보인다.


그래서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이런 판결을 내리게 된다.


“나는 콘텐츠 체질이 아니야.”





그런데 정말 그럴까?



조금만 방향을 바꿔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당신이 멈추는 이유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당신은

사람을 속이고 싶지 않고,

가능성을 확정처럼 말하고 싶지 않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생각을 권위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이건 약점이 아니다.

윤리다.


다만 이 윤리를

‘작품형 콘텐츠’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콘텐츠를 ‘작품’으로 착각하고 있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걸 내놓아도 되는가?”

“이건 완성되었는가?”

“남에게 보여줄 만큼 수준이 되는가?”


이 질문들은

전부 작품을 만들 때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콘텐츠는 작품이 아니다.

적어도,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야 한다.


당신에게 콘텐츠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정답이 아니라 기록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당신은

아직 쓰지도 않은 글을

이미 ‘완성품’으로 심사하고 있다.


그래서 시작조차 못 하는 거다.





“아직은…”으로 시작해도 괜찮다



당신이 멈춰 있던 자리에서

한 발만 옮기면 된다.


이렇게 시작해도 된다.


  • “아직 정답은 모르겠다”

  • “지금 기준에선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 “이게 맞는지는 나중에 다시 보려고 한다”



이 문장들은 미완성이 아니다.

정직한 상태 보고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런 문장에 더 오래 머문다.


완벽한 답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현재 상태를 원하기 때문이다.





멈추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다



많은 조언이 이렇게 말한다.


“일단 써라.”

“완벽하지 않아도 올려라.”

“과감해져라.”


하지만 이건

당신 같은 사람에게 잘 맞는 처방이 아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더 큰 용기가 아니라

다른 정의다.


  • 콘텐츠는 선언이 아니다

  • 콘텐츠는 증명이 아니다

  • 콘텐츠는 설득이 아니다



콘텐츠는

지금의 나를 숨기지 않는 기록이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는 순간,

손은 다시 키보드 위로 돌아온다.





이 글을 끝내며



만약 이 글을 읽으며

“이거 내 얘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이미 콘텐츠를 할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너무 쉽게 말한다.

당신은 너무 신중할 뿐이다.


그리고 신중함은

방향만 바꾸면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된다.


다음 글에서는

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호들갑의 시대’에서 더 외롭게 느껴지는지,

그 구조적인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건 위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의 이야기다.


당신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을 설명하려 한다.

댓글

댓글 작성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으며, 답글 알림에만 사용됩니다.

이어서 읽어보세요

새 글 알림 받기

Bamchi Blog의 새 글이 발행되면 이메일로 알려드립니다.

이메일은 새 글 알림에만 사용됩니다.